생명과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가치 기반의 사회를 꿈꾸며

저출생·고령화와 불평등 구조의 심화, 성장동력 상실 등으로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대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2020년에 사회적가치경영연구원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 출범 후 곧바로 닥친 코로나19 감염병 재난, 현장 연구를 위해 함께 시작한 협동조합 운영의 어려움, 특히 초대원장이셨던 고 김용복 박사님의 투병과 갑작스러운 소천으로 연구원이 자리 잡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 새 원장으로 허욱 박사를 모시고 비전과 철학을 공유하는 능력있는 연구원들과 함께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우리의 비전과 주요 사업을 소개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통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이제 1인당 국민소득 3만5천불에 달하는 선진국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현재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으며, 불평등과 차별이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불안을 경험하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국민 상당수는 우울증을 경험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온 힘껏 달려 겨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는데, 왜 한국은 지금의 위기에 처해 있을까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마을공동체가 약화되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망은 깨어지고 도시에서 1인 1가구로 홀로 사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해체된 자리를 건강과 소득 불평등, 저출생, 급속한 고령화와 고독사 증가, 기후위기와 에너지 고갈의 위기가 차지해 버렸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공동의 가치로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민주주의가 주권 재민 즉, 나라의 주인이 시민이고 시민 각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함을 천명하는 것이라면 공화주의는 공공선,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양보하고 조정하는 시민적 덕성과 시민 참여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넘어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각자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민주의 과잉과 공화의 빈곤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공화국은 정치적 권리의 평등뿐만 아니라 경제의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정치 권력의 민주화와 경제 권력의 민주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질병, 실업, 노령, 장애 등의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급여 등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하는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가의 무기력함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한 힘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위기를 겪고 나자 어떻게든 경제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성공이라는 생존 원리가 사회에 팽배해졌고, 돈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협동이나 공존 같은 사회적 윤리는 생존 본능 앞에서 완전히 힘을 잃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상당수가 능력주의에 기초한 자기책임 윤리를 기본으로 여깁니다. 성공이 나의 것이듯 고통과 시련도 온전히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철저한 각자도생 논리입니다. 그러니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타인이 스스로 져야 할 몫이라는 것입니다. 외로운 늑대가 늘어가고, 사회가 각박해져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출신이나 계급, 인종, 젠더, 연령 등에서 차별이 없는 완전한 공정성을 전제로 하는데, 인간사회에서 완전한 공정성이란 실현되기 어려운 허구입니다. 고아와 장애인, 병에 걸린 독거노인, 난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 자기책임 윤리를 들이밀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아닌 영장류 동물들도 무리의 약자를 돌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공존해 나가는 유대와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패배시켜야 한다는 관점으로는 관계 회복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웃과 내가 하나이고, 국가 공동체 전체 나아가 신과 연결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높은 수준의 영성과 시민의식이 한국 사회를 건강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사회적가치경영연구원은 복지와 경제성장의 선순환에 대한 연구와 함께 한국 사회가 잊어버린 공동체성과 관계성의 회복, 영성의 회복에 역점을 두고 미래사회의 새 비전을 세우려 합니다.


또한 시민들이 만든 공동체 경제, 사회연대경제(Social Solidarity Economy)가 있어야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며 사회가 온전히 작동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급격한 고령화와 불평등 심화에 따른 공동체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주거복지, 요양, 돌봄, 의료,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새로운 경제 기반으로 사회연대 경제를 육성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가치경영연구원은 스위스 VMI 연구소, 독일 디아코니아공동체, 이탈리아 카디아이(CADIAI), 샹티에(퀘백 사회적경제협의체), 일본 소비자협동조합 및 의료생활협동조합 등 세계적인 사회연대경제 조직들과 연대하여, 한국에서 사회연대경제를 육성하는 싱크탱크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초대원장이셨던 고 김용복 박사님이 남겨주신 “하나님의 통치,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PIC), 민중이 주인 되는 나라”를 사회적가치경영연구원의 비전으로 삼아 최선을 다해 실행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함께 참여하고, 응원하며,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2024. 2. 4.


사단법인 사회적가치경영연구원

이사장   임 종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