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사회연대경제의 요람 볼로냐를 만든 힘

심영보 연구위원 2019-07-20 03:54:40

본 탐방 기사는 2019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국제희년재단준비위원회를 동행하여 볼로냐를 방문하면서 인터뷰와 취재를 담당한 심영보 연구위원의 글이다. 심영보 연구위원은 당시 CBS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카디아이 헤드쿼터에서 회의 중인 방문단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교회는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교회의 헌신을 빼놓고 볼로냐의 오늘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 마르코 롬바르도 (볼로냐시 참사관)  
 


볼로냐시 마르코 롬바르도 참사관의 모습



 
국제희년재단준비위원회는 지난 2년 간 재단 설립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청년의 미래에 관한 한국교회의 헌신에 대하여 고민해왔습니다.
이러한 고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준비위원회는 2019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이태리 볼로냐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볼로냐 방문의 전체 일정은 볼로냐시의 모범적인 돌봄 협동조합 카디아이(CADIAI, 이태리 사회적협동조합 A형)가 국제희년재단준비위원회의 협력기관으로서 전체 방문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준비위원회는 이번 방문 기간 동안 볼로냐시 부시장 마릴레나 필라티 Marilena Pilati, 참사관 마르코 롬바르도 Marco Rombardo, 정신보건국장 안젤로 피오리티 Angelo Fioritti,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 회장 리타 게디니 Rita Ghedini, 카디아이 CADIAI 사회적협동조합 회장 프랑카 굴리에메티 Franca Gugliemetti, 카디아이 상임이사 파트마 피지라니 Fatma Pizzirani, 카디아이 국제사업 책임자 라라 퓨리에리 Lara Furieri, 볼로냐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알체스테 산투아리 Alceste Santuari 등 볼로냐시와 사회연대경제의 핵심 인물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속에서 우리는 저절로  ‘참 다른 사회에 와 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볼로냐시 마릴레나 필라티 부시장과 함께



     약 4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서 유럽에서 가장 발전적인 도시 중의 한 곳으로 성장한 볼로냐. 볼로냐는 GDP의 약 45%가 사회연대경제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2018년 기준 볼로냐 협동조합 연합회 제공 매출 자료 표1-1 참조)  

[표1-1] 볼로냐의 사회연대경제의 규모


이러한 GDP 규모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정도로 큰 경제규모가 사회연대경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면 볼로냐라는 도시는 경제구조뿐만이 아니라 사회제도, 문화와 교육, 심지어 정치와 외교활동의 중심에도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연대경제의 가치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미리 해봄직하지 않을까요? 사회연대경제의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를 위한 연대와 지지 활동에 있다고 전제해본다면 말입니다.  

 하나의 예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볼로냐의 정책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6년 대한민국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강제 입원 조치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인권침해를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정신질환자의 인권문제가 공식적인 사회문제의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그런데 이태리는 1978년 같은 이슈로 정신질환자들을 사회에서 격리 수용하는 것을 반인권적 행위로 인식하고 정신병원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신병원을 폐쇄하는 대신 정신질환자들을 지역사회 안에서 치료, 재활, 복귀시키는 정신보건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무려 40년 전의 일입니다. 그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인구 6만 명 당 지역정신보건센터를 세우고, 정신질환자들과 장애인들을 지역사회 안에 포용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볼로냐에서 만났던 행정가들, 협동조합 관계자들, 정치인, 학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정신질환자들과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사회 발전의 핵심이며 ‘차별과 사회적 배제가 없는 포용도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 말들이 인간애를 실천하기 위한 그들의 지난한 노력과 확고한 의지가 배어 있는 진심이 담긴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볼로냐의 정신병원 폐쇄 결정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볼로냐시 정신보건국 안젤로 피오리티 국장


볼로냐 방문 이틀 째, 우리는 카디아이가 볼로냐시의 요청을 받아 2016년에 새롭게 세운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 파르코 델 나빌레 Parco Del Navile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폐쇄된 제지공장이었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곳이 제지공장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은 요양원 내부의 복도를 따라 전시된 옛 제지공장의 모습과 환경정화 작업 그리고 새롭게 세워진 요양원 시설의 현재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습니다.   

볼로냐 파르코 델 나빌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



소박하면서도 노인들의 삶의 질을 사려 깊게 고려한 공간과 시설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노인들을 밝은 표정으로 돌보고 있는 지역사회 출신의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말 부러운 광경이었습니다. 파르코 델 나빌레는 단지 노인들을 돌보는 시설일 뿐 아니라 지역의 청장년들이 일하는 보람되고 안정된 일터이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대간, 계층간 갈등에 더하여 사회적으로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헬조선이라는 세 단어로 표출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 말입니다.   
 

다음 방문지는 볼로냐협동조합연합회였습니다.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를 몇 년 동안 수차례 방문해왔고 연합회 관계자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 본부 건물을 직접 찾아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강인한 인상의 여성 리더인 리타 게디니 회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리타 게디니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볼로냐에 있는 400 여 개의 협동조합들은 74,263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2018년 기준, 표1-2) 이들 중 86%는 안정적인 고용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높은 수치는 볼로냐시가 협동조합을 육성하고 그 기업들의 성장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협동조합들 간의 협동의 힘이야말로 협동조합의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에 더해 협동조합은 반드시 올바른 경영능력과 질적 관리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협동조합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이루어 내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협동조합은 자기생존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자기정체성도 상실하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리타 기드니 볼로냐협동조합연합회장이 협동조합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끊임 없는 자기혁신을 이루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볼로냐의 돌봄 협동조합과 지방정부 간의 민관협력의 경험들을 분석, 연구하여 질적 관리 모델을 이론화하고 이를 다시 현장의 협동조합들과 공유해온 볼로냐대학교 경영대학원도 방문했습니다. 역시 협동과 연대의 경험, 질적 관리 모델이라는 경영관리 시스템은 현장과 유리되지 않고 “Learning By Doing”이라는 현장 실천 사례의 이론화라는 명백한 원칙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사회연대경제의 현장에 뿌리를 둔 이론과 모델, 커리큘럼을 만들어가고 있는 볼로냐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존재는 볼로냐시가 유럽 내에서도 가장 주도적인 민관협력에 의한 사회연대경제가 성장,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볼로냐 경영대학원에서 소셜 비즈니스 이슈에 대한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방문단


 
짧은 방문을 마무리하는 송별회 만찬 자리에서 그들은 사회발전을 위해 감당하고 가야 할 자신들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분단의 아픈 역사에 대해 위로를 건네면서 남북한 평화공동체 회복에 대한 우리의 소망에 지지를 보내주었고, 함께 협력할 일이 있다면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연대의 정신이라 느낄 수 있었고 이에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송별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여름밤의 풍경은 그 어느 때의 볼로냐보다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볼로냐 시청 광장에서는 여름밤의 시네마천국이 펼쳐지고 있었고, <남과 여>의 친숙한 장면들이 아득한 기억을 되살려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헌신을 빼놓고서 오늘의 볼로냐를 말할 수 없다.”는  마르코 롬바르도 참사관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귓전에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볼로냐 송별회 만찬



<카디아이 CADIAI 이태리 볼로냐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에게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직원에게는 가장 좋은 사회적, 경제적, 직업적 조건과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보장하고, 조합원의 참여와 책임 있는 기업가정신을 토대로 협력하고, 고객 기반의 서비스 프로젝트와 끊임 없는 서비스 질 개선으로 사용자의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는 결과를 제공합니다."


카디아이가 선포한 자신들의 미션 선언문입니다. 카디아이는 Cooperative(협동조합), Assistenza (돌봄), Domicillare (방문), Infermu (환자), Anizani (노인), Infanzia (어린이)라는 단어들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카디아이는 1974년 고용불안정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던 볼로냐 지역의 해고된 유치원 교사와 간호사, 간병인 등 여성 스물 일곱 명으로 조직된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카디아이는 1. 방문 홈케어 사업을 통한 고령자들의 주거환경관리, 가사, 보건위생 서비스 제공, 2. 필요에 따라 체류기간을 조정할 수 있는 노인요양시설 (단기 체류 또는 구호, 수술 후 체류, 재활 숙박 등)의 운영 (최근 2016년에 개원한 파르코 델 나빌레 - 사진자료 2), 3. 장애인 돌봄, 4. 정신지체자 돌봄 (1978년 이탈리아는 정신병원을 폐쇄하는 법령을 통과시킨 이후 정신질환자들을 지역사회에서 포용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5. 어린이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 (0~3세 유아원, 4~6세 유치원, 장애어린이 재가교육서비스 등), 6. 작업장 보건 안전 교육 7. 국제협력 (쿠바, 보스니아 등) 사업들을 진행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카디아이의 기업 규모는 직원 1,471 명 (2015년 기준), 연 매출액은 450만 유로 (약 600 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표1-1에서 알 수 있듯이 카디아이의 고객은 51.1%가 공공기관인 지방정부와 건강관련 기관들입니다. 다음으로 22.4%는 카디아이가 컨소시엄을 통해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사업들, 그리고 5.1%는 일반회사들입니다. (2018년 기준)

[표1-1] 고객별 카디아이의 매출실적


심영보 연구위원  silvio.sh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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