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 집행위원회가 지난 11월 21일부터 26일까지 키프로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 성명서는 2022년 카를스루에 총회에서 발표한 '살아있는 지구 :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향하여'(The Living Planet : Seeking a Just and Sustainable Global Cummunity)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와 제16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6)의 결과를 평가하고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제시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 3:8)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번 성명서는, 현재 지구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한 가운데, 2024년은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스페인의 역사적인 홍수, 필리핀의 연속적인 태풍, 라틴 아메리카의 전례 없는 산불 등 전 지구적 기후재난이 계속되고 있다.
2022년 카를스루에 총회는 이미 "현재의 파괴적인 길을 의도적으로 계속 가는 것은 범죄"라고 선언하며,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 위기에 가장 적은 책임을 지고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 우리의 자녀들과 미래 세대들, 그리고 살아있는 세계를 향한 범죄임을 강조한 바 있다. 2024년의 성명서는 이러한 위기의식을 더욱 구체화하며, 특히 원주민, 여성,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받는 불균형적 피해를 강조했다.
WCC는 이러한 위기의 순간을 '환경적, 도덕적 카이로스'로 규정하고, '생태적 메타노이아'를 촉구했다. 여기서 메타노이아는 단순한 후회나 반성이 아닌, 마음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2022년 카를스루에 총회가 제시한 "생태적 회개"의 구체적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 성명서는 '생명 긍정 신학'(life-affirming theologies)을 강조했다. 이는 2022년 카를스루에 총회가 제시한 "창조 세계의 정의를 위한 에큐메니칼 신학"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태평양과 원주민들의 영성에서 영감을 받아 모든 생명과 땅, 창조세계의 고유한 존엄성을 인정하는 신학적 관점이다. 이는 생명과 땅,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왜곡된 신학에 대한 도전이자, 생산과 소비, 분배, 투자의 방식을 전환하는 실천적 회개를 요구한다.
WCC는 각국 정부에 △상호 연결된 기후, 생물다양성, 토지 사막화 위기에 대한 총체적 접근 △군사비와 화석연료 보조금의 재조정 △기후 취약국의 부채 탕감 등을 요구했다. 이는 카를스루에 총회가 제시한 "생명의 경제"(Economy of Life)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 제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25년 브라질 벨렘에서 열리는 제30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준비와 '기후정의행동을 위한 에큐메니칼 10년' 동참 촉구다. 이는 2022년 카를스루에 총회에서 결의한 "기후정의행동을 위한 에큐메니칼 10년" 선언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것으로, 교회의 가시적 일치와 실천적 행동을 요구한다.
이번 성명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회의 책임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정의와 공평에 기초한 생명 공동체 건설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는 카를스루에 총회가 제시한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모든 생명의 온전성을 향한 여정"의 구체적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WCC의 부름에 응답하여, 생태적 회개와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2025년 시작될 '기후정의행동을 위한 에큐메니칼 10년'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구체적 실천이 요구된다.
첫째, 교회 차원의 생태적 메타노이아 실천이다. 교회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일회용품 줄이기, 교회 부지 내 생태공간 조성 등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기후정의행동을 위한 신학교육 강화다. 목회자 양성 과정과 평신도 교육에 생태신학과 기후정의행동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키고, 성경적 창조 보전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와 연대한 기후행동이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기후위기 대응에 참여해야 한다.
넷째,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목회적 돌봄이다. 폭염, 한파, 재난 상황에서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교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 실천을 통해 한국교회는 WCC가 제시한 '생명 긍정 신학'을 현실화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한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심영보 연구위원 silvio.shim@gmail.com